유럽에서 지내는 동안 다양한 여행을 떠났습니다.
2001년 첫 유럽 여행부터 지금까지 여러 모습의 여행을 해왔습니다. 돌이켜보면 떠나는 이유도, 여행을 계획하는 방식도 때마다 달랐습니다.
한 번은 가능한 많은 곳을 가보려고 했고, 어느 때는 한 지역에 오래 머물렀습니다. 자동차로 길을 따라가다가 상황에 맞추어 다음 목적지를 정하기도 했고, 가고 싶은 곳을 미리 정해두고 하나씩 찾아다닌 적도 있습니다.
2001 — 처음이라 욕심냈던 유럽
2001년 처음 유럽에 왔을 때 목적지는 덴마크의 알보그라는 도시였습니다.
그곳에서 열리는 학회에 참석하기 위해 처음으로 유럽행 비행기를 탔습니다. 하지만 알보그만 다녀오기는 아쉬웠습니다. 이왕 유럽까지 가는 김에 다른 곳도 더 가보고 싶었습니다.
결국 런던으로 들어가 유로스타를 타고 파리로 갔고, 다시 야간열차를 타고 하이델베르크로 이동했습니다. 그곳에서 북쪽으로 올라가 알보그에 도착한 뒤, 마지막에는 프랑크푸르트까지 내려와 한국행 비행기를 탔습니다.
런던 IN → 파리 → 하이델베르크 → 알보그 → 프랑크푸르트 OUT
이동이 많아 힘들기도 했지만, 처음 만난 유럽은 어디를 가든 모든 것이 새로웠습니다.
이른 아침 함부르크에서 기차를 갈아타고 알보그로 향하던 길이었습니다. 창밖 넘어 평화로운 덴마크의 아침 풍경을 바라보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는 왜 이제야 유럽에 왔을까.’
그저 여행 중에 스쳐간 생각이었을지도 모릅니다. 돌아보니 그 무렵부터 유럽에서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을 조금씩 했던 것 같습니다.
2005 — 종이지도를 들고 떠난 노르웨이
2005년 5월 말, 한국에서 온 일행들과 미리 약속한 오슬로의 한 호텔에서 만났습니다. 다음 날 아침, 자동차 세 대에 나누어 타고 종이지도 한 장 들고 여행을 떠났습니다.
일행마다 일정이 달라 처음부터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기는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큰 방향만 정해두고, 이동하면서 그때그때 다음 행선지를 정하기로 했습니다. 숙소도 따로 예약하지 않은 채 오슬로를 출발했습니다.
가다가 경치가 좋은 곳이 보이면 차를 세워 사진을 찍고, 마음에 드는 마을을 만나면 숙소를 찾아 하루를 묵었습니다. 그곳이 좋으면 하루 더 머물기도 했습니다.
일부 일행이 먼저 돌아간 뒤, 브릭스달 빙하에서 Geiranger 피오르드로 향했습니다. 그날도 종이지도를 보며 길을 찾아갔습니다
6월 초라 처음에는 도로에 별다른 문제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산으로 올라갈수록 길가에 쌓인 눈이 점점 높아졌습니다. 어느 곳에서는 사람 키를 훌쩍 넘을 정도였습니다.
그러다 결국 차를 멈춰야 했습니다.
Geiranger로 이어지는 좌회전 길이 눈 때문에 폐쇄되어 있었습니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습니다. 종이지도만 보고 찾아온 터라 그 길이 아직 열리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습니다.
왔던 길을 되돌아가 페리를 타면 다른 길로 갈 수도 있었지만, 일행들의 귀국 일정 때문에 결국 포기했습니다. 그렇게 Geiranger 피오르드는 보지 못하고 차를 돌려야 했습니다.
2019 — 이름이 헷갈려서 떠난 두 나라
2019년에는 슬로바키아와 슬로베니아를 여행했습니다.
당시 두 나라는 제게 무척 생소했습니다. 슬로바키아는 체코슬로바키아에서, 슬로베니아는 유고슬라비아에서 독립한 나라라는 정도만 알고 있었습니다. 이름이 비슷하다 보니 가끔 어느 나라가 어느 나라인지 헷갈리기도 했습니다.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헷갈리면 둘 다 직접 가보자.
그래서 비엔나를 출발점으로 두 나라를 묶어 자동차 여행을 떠났습니다.
내비게이션으로 길을 찾아 직접 차를 몰았습니다. 도시와 산, 호수를 지나며 두 나라를 여행하다 보니, 이름만 비슷하게 느껴졌던 곳에서 서로 다른 풍경과 도시, 사람들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 뒤로는 두 나라의 이름도 수도도 더 이상 헷갈리지 않게 되었습니다.
2020 — 사흘 만에 떠난 돌로미티
2020년에는 코로나로 인한 봉쇄로 한동안 여행을 자유롭게 다니기 어려웠습니다. 다른 나라로 가는 것은 물론이고, 사는 곳에서도 마음대로 이동하기 어려운 때였습니다.
그러다 여름이 가까워지면서 조금씩 봉쇄가 풀리고 국경도 다시 열리기 시작했습니다.
먼저 여행을 출발한 지인에게 국경을 넘는 데 문제가 없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오랫동안 집에 머물러야 했던 가족들은 그 말을 듣자마자 어디든 떠나고 싶어 했습니다.
어디로 갈까 생각하다 예전에 가봤던 돌로미티가 다시 떠올랐습니다.
가보고 싶은 곳 몇 군데를 정하고 동선을 생각해 숙소를 예약했습니다. 그리고 짐을 챙겨 사흘 만에 출발했습니다.
그때는 잘 준비하는 것보다 일단 늦지 않게 떠나는 것이 중요한 여행이었습니다.
그 모든 것이 여행이 되었습니다
여행을 떠나기 전에는 목적지를 정하고 시간과 거리, 이동 방법을 생각하며 계획을 세우곤 합니다.
처음이라 하나라도 더 보고 싶었던 여행도 있었고, 몇 군데의 목적지만 정한 채 길에서 다음 행선지를 정했던 여행도 있었습니다.
두 나라의 이름이 헷갈려 시작한 여행도 있었고, 다시 열린 국경을 넘어 사흘 만에 떠난 여행도 있었습니다.
떠나는 이유도 달랐고, 그때마다 놓인 상황도 달랐습니다. 그래서 여행을 계획하는 방법도 달라졌습니다.
하지만 막상 떠나고 나면 계획대로 되지 않는 일도 생겼습니다. 가려던 길이 눈에 막히기도 하고, 예상하지 못했던 곳에서 하루를 더 머물기도 했습니다.
돌아보면 그런 것들까지 모두 그 여행의 일부가 되어 있었습니다.
이 글과 함께 읽기 — 유럽, 어디까지 갈까?
- 동선을 계획한다면 → 「유럽, 어디까지 갈까? — 나만의 동선 만들기」
- 서로 다른 여행의 경험을 읽는다면 → 「유럽, 어디까지 갈까? — 다른 모습의 여행」
- 떠남에 대해 생각해 본다면 → 「유럽, 어디까지 갈까? — 나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