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으로 가는 중 — 길어진 비행, 달라진 하늘길

장거리 비행을 할 때면 기내 스크린에 나오는 항로 지도를 자주 봅니다.

지금 어디쯤 날고 있는지, 어떤 도시와 지역을 지나고 있는지 보는 것을 좋아합니다.

2023년, 코로나 팬데믹 이후 오랜만에 탄 한국행 비행기에서 본 항로는 예전과 많이 달라져 있었습니다.

얼마나 아래로 내려가는 거지?

2023년 3월, Finnair를 타고 헬싱키에서 한국으로 향했습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처음 가는 한국이었습니다.

기내 항로 지도를 보니 비행시간이 예전보다 길어진 이유를 알 수 있었습니다.

얼마나 아래까지 내려가는 거지?

헬싱키를 떠난 비행기는 러시아 영공을 피해 계속 남쪽으로 내려갔습니다.

한참을 내려간 뒤에야 한국 쪽으로 방향을 틀었습니다.

예전보다 두 시간 정도 더 걸려 한국에 도착했습니다.

같은 달, 한국 일정을 마치고 인천공항에서 헬싱키로 돌아가는 비행기에 탔습니다.

이번에는 전혀 다른 낯선 방향으로 날아가기 시작했습니다.

유럽으로 가는데 왜 동쪽으로 가지?

인천에서 헬싱키를 향해 이륙한 Finnair 비행기는 이번에는 동쪽으로 기수를 틀었습니다.

유럽으로 가는 비행기였으니 당연히 익숙한 서쪽으로 향할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항로 지도 위의 비행기는 한반도를 가로질러 동해를 향하고 있었습니다.

왜 저쪽으로 가지?

한반도를 가로질러 동쪽으로 향하는 비행기를 보다가 문득 예전에 들었던 이야기가 떠올랐습니다.

냉전시대에는 소련 영공을 통과하기 어려워 유럽과 동아시아를 오가는 비행기들이 북극 쪽으로 돌아가기도 했다고 합니다.

설마 진짜 북극으로 가나?

함께 가던 지인이 승무원에게 물어봤습니다. 북극 쪽으로 가는 게 맞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이번에는 혹시 오로라도 볼 수 있을까 싶어 지인과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창밖에 펼쳐진 미지의 풍경

항로는 계속 북쪽으로 이어졌습니다. 기내 지도를 보고 있다가 문득 창밖 풍경이 무척 궁금해졌습니다.

밖을 내다보니 온통 눈과 얼음으로 덮인 풍경이 펼쳐져 있었습니다. 정확히 어디쯤이었는지는 모르지만, 북극 근처였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처음 가보는 북극항로였습니다. 창밖으로 보이는 낯선 미지의 풍경을 한참 바라봤습니다.

이곳이 북극이고 이렇게 생겼구나.

수면 시간이라, 화장실 창 너머로 담아둔 북극의 풍경입니다(아래 가운데 사진).

북극해와 그린란드 인근을 보여주는 핀에어 기내 항로 지도
북극권을 지나는 비행 항로 (uKomes 직접 촬영)
비행기 창밖으로 내려다본 얼음으로 덮인 북극권 풍경
비행기에서 바라본 북극권 (uKomes 직접 촬영)
핀에어 북쪽 항로 비행 후 받은 The Northern Route Diploma
핀에어 북극 항로 증서 (uKomes 소장 스캔본)

그리고 하나 더 재미있는 기억이 있습니다.

헬싱키에 도착하기 전이었던 것 같습니다. 승무원이 The Northern Route Diploma라는 작은 증서를 탑승객들에게 나눠줬습니다.

나중에 찾아보니 Finnair가 1983년 헬싱키–도쿄 북극항로를 운항할 때 승객들에게 증서를 나눠주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러시아 영공을 피해 북쪽 항로를 다시 이용하면서 이 증서도 함께 돌아온 것입니다.

3년 뒤, 다시 같은 길

2026년 2월, 다시 Finnair를 타고 한국을 다녀왔습니다.

유럽에서 한국으로 갈 때는 지난 번처럼 다시 남쪽으로 돌아갔습니다.

한국에서 일정을 마치고, 헬싱키로 돌아오는 비행기에 다시 올랐습니다.

비행기가 이륙하고 항로 지도를 지켜봤습니다.

다시 동쪽으로 향하고 있었습니다.

2023년 처음 봤을 때 무척 이상했던 이 항로가 3년이 지난 비행기 안에서는 더 이상 낯설게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고, 달라진 하늘길은 어느새 익숙해진 다른 길이 되어 가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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