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5년 노르웨이 여행은 꽤 오랜 시간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가끔 생각나곤 합니다.
이 여행은 왜 이렇게 오래도록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을까 궁금합니다.
유럽에서 처음 한 자동차 여행이어서일까?
아니면 지금은 하기 어려운 아날로그 방식으로 떠난 여행이어서일까?
종이 지도 한 장으로 떠난 여행
여행을 준비하는 과정부터 실제 여행까지, 지금과는 많이 달랐습니다.
학회 참석을 위해 한국에서 스웨덴 스톡홀름을 방문한 일행들과 노르웨이를 함께 여행하기로 했습니다. 오슬로의 한 호텔에서 같은 날 숙박을 하고 다음 날 아침에 만나기로 미리 약속했습니다.
지금과 달리 서로 이동 중에는 연락을 할 수 없으니, 약속을 믿고 스웨덴 예테보리에서 오슬로를 향해 출발했습니다. 오후 늦은 시간에 약속한 호텔에 도착했지만, 일행들의 모습은 잠들기 전까지 보이지 않았습니다. 약속한 날 아침, 밤늦게 도착한 일행들을 무사히 만나 함께 아침을 먹었습니다.
여행 중간에 귀국하는 일행이 있어 여행 동선은 초반 이동 거리가 짧은 시계 방향으로 잡았습니다.
아침 식사 후 총 11명의 일행은 자동차 3대에 나누어 타고, 노르웨이 도로가 그려진 캠핑용 종이 지도에 의지해 오슬로를 출발했습니다. 첫 목적지인 플롬(Flåm)을 향했습니다.
경치가 좋은 곳에 도착하면 현지에서 숙소를 구했습니다. 마음에 드는 곳에서는 하루를 더 머물기도 했습니다.
함께했던 사람들
이 여행을 생각하면 함께했던 사람들과 그때의 순간들이 떠오릅니다.
인원도 많았고 일정도 조금씩 달랐지만, 같이 여행을 만들어 갔습니다.
그리고 여행 중에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도 기억납니다.
우연히 들른 어느 시골 마을의 한 노르웨이 노년 남성은 태어나서 하루에 이렇게 많은 동양인을 본 것은 처음이라며 함께 사진을 찍었습니다.
어느 펜션(Hytte)에서는 식초가 필요해 주인집을 찾아갔습니다. 마침 어른들이 자리를 비운 사이였는데, 주인집 남매가 함께 도와주었습니다. 특히 어린 남동생은 영어·노르웨이어 사전까지 가져와 마침내 식초를 찾아주었습니다.
노르웨이식 아침 식사를 했던 그 집의 부엌과 식사를 차려주셨던 펜션 아주머니도 기억납니다.
잊을 수 없는 풍경
오슬로를 벗어나자 엽서에서나 볼 법한 풍경들이 계속 펼쳐졌습니다. 그럴 때마다 차 한 대가 멈추면 다른 차들도 함께 멈췄습니다. 모두 내려서 사진을 찍느라 첫날에는 이동 속도가 상당히 느렸습니다. 폭포가 가는 곳마다 있다 보니, 우스갯소리로 이전 폭포보다 크지 않으면 멈추지 말자고도 했습니다.
도로를 따라가다 다리가 없는 곳에서는 작은 페리를 타고 건넜고, 유명한 피오르를 보기 위해 페리를 타기도 했습니다. 24km가 넘는 긴 터널도 지나보고, 그 터널이 생기기 전에 사용했다던 산길을 올라 송네 피오르를 내려다보았습니다. 기차에서 잠시 내려 바라보았던 거대한 폭포도 기억납니다.
여름이 다가오고 있었지만 날씨는 쌀쌀했습니다. 산악 도로 주변에는 키보다 높이 눈이 쌓여 있었고, 눈 때문에 통제된 도로 앞에서 차를 돌려야 했던 기억도 납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장소 하나를 꼽자면 브릭스달 빙하가 아닐까 싶습니다.
빙하를 만나기 위해 차를 타고 깊은 계곡으로 들어갔습니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한참을 걸어 들어간 끝에 마침내 빙하를 마주했습니다.
얼마나 오랜 시간을 품고 있었을까?
멀리서 보는 광경도 놀라웠지만, 가까이서 보는 것은 더욱 신기했습니다. 빙하를 직접 만져보기도 하고 맛보기도 했습니다.
푸른빛이 감도는 빙하의 틈으로 들어가 사진도 찍었습니다. 그러다 빙하 안에서 천둥 같은 소리가 울려 깜짝 놀라 뛰쳐나오기도 했습니다. 아마 빙하가 천천히 움직이면서 내는 소리였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것이 내가 기억하는 브릭스달 빙하의 모습입니다. 그때는 그 풍경이 빠르게 사라질 것이라곤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지금은 빙하가 점점 모습을 감추고 있다는 소식을 간혹 접합니다. 2011년에는 아래쪽 빙하가 본체와 분리되면서 모습도 크게 달라졌다고 합니다.
우리가 가까이 다가가 만져보고 느꼈던 그 경험도, 당시의 풍경도 이제는 다시 만날 수 없습니다.
그 시절의 나도, 그 시간을 함께했던 우리의 모습도 이제는 빙하와 함께 사진 속에 남아 있을 뿐입니다.
그래도 우리는 거기에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