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의 유럽, 네 개의 경계선 — 연합 그리고 남겨진 차집합


유럽의 다양한 경계선들, EU, EEA, Eurozone과 Schengen의 관계를 정리하면서 다이어그램을 하나 그리려고 했습니다.

처음에는 어렵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EU, EEA, Eurozone까지는 동심원으로 쉽게 그려졌습니다.

그런데 Schengen까지 넣으려니 생각처럼 되지 않았습니다. Schengen의 경계는 앞의 세 영역과 또 다르게 겹쳤습니다. 그림이 복잡해지기 시작하자 의문이 들었습니다.

왜 하나의 유럽 안에 이토록 서로 다른 범위의 공동체들이 얽혀 있는 것일까?

결국 정확한 관계를 보여주면서도 너무 복잡하지 않게 만들기 위해 고민하다가, 결국 네 개의 사각형이 서로 겹치는 다이어그램을 완성했습니다.

EU, EEA, Eurozone, Schengen의 서로 다른 포함 관계를 보여주는 유럽 공동체 다이어그램
완전히 겹치지 않는 유럽의 다양한 경계선 - EU, EEA, Eurozone 그리고 Schengen (uKomes 제작)

→ EU·EEA·Eurozone·Schengen의 차이를 확인하고 싶다면, 「유럽의 다양한 경계선 — EU, EEA, Eurozone, Schengen」

그림을 완성하고 다시 들여다봤습니다. 그릴 때는 한데 묶어주는 '교집합'에만 시선이 갔는데, 완성된 그림에서는 오히려 겹치지 않은 채 남아 있는 '차집합'들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러자 처음과는 조금 다른 결의 질문이 생겼습니다.

그들은 왜 모든 것을 하나로 통합하지 않았을까?

하나의 원이 아닌 유럽

하나의 유럽이라고 부르지만, 실제로 그 안의 모든 나라가 같은 선택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EU 회원국이라고 해서 모두 유로를 사용하는 것은 아니며, 노르웨이는 EU 회원국이 아니지만 EEA와 Schengen에, 스위스 역시 EU 회원국은 아니지만 Schengen에만 참여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방식을 ‘차등통합(Differentiated Integration)’, 혹은 정책에 따라 지리적 경계가 달라진다는 의미에서 ‘​가변 기하학(Variable Geometry)’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모든 국가가 모든 영역에 같은 방식으로 참여하지 않는 것입니다.

물론 유럽이 처음부터 서로의 차이를 남겨두기 위해 이렇게 설계되었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국가마다 이해관계와 정치적 상황이 달랐고, 어디까지 함께할 수 있는지에 대한 생각도 달랐을 테니까요.

그런데 지금의 ‘조각보’ 같은 유럽을 보고 있으면 오히려 그 점이 흥미롭게 다가옵니다.

완벽한 일치가 아니라 ‘그 정도까지만’ 함께​할 수 있었기에 가능했던 타협도 있지 않았을까 짐작해 봅니다.

함께한다는 것은 같아진다는 뜻일까

저는 그동안 ‘통합’이라는 말을 들으면 여러 개가 하나가 되는 모습을 먼저 떠올렸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완성된 그림 속 네 개의 영역은 하나의 원이 되지 않았습니다. 서로 다른 부분을 그대로 남겨둔 채 겹쳐 있었습니다.

모든 것을 함께하지 않아도 함께할 수 있는 모습이었습니다.

이 그림을 보고 있자니 EU의 모토인 ‘United in diversity’​라는 말도 떠올랐습니다.

물론 지금의 제도들이 이 모토를 구현하기 위해 만들어졌다는 뜻은 아닙니다.

다만 서로 다른 부분이 남아 있는 여러 영역이 겹쳐 있는 그림을 보고 나니, 그 말이 전과는 조금 다르게 다가왔습니다.

함께하기 위해 필요한 것

서로 다른 부분을 남겨 둘 수 있다고 해서 모든 차이를 그대로 두어야 하는 걸까요?

참여하는 범위가 달라지면 구성원 사이에 격차가 발생하기도 하고, 누가 중심이고 누가 주변인가 하는 문제도 생길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하나의 공동체라면 함께 지켜야 할 원칙도 필요할 것입니다.

어디까지 함께하고, 어디까지 서로 다른 채로 남을 것인가.

다시 한국을 바라보며

유럽의 다이어그램을 그리다 보니, 제가 유럽에서 생활한 20여 년 동안 많이 달라진 한국의 모습도 자연스럽게 떠올랐습니다.

한국 사회에는 오래전부터 풀어가고 있는 여러 문제와 복잡한 이해관계가 있습니다. 여기에 다문화 가정과 이주노동자, 외국 출신 주민과 체류자가 늘어나면서, 우리가 함께 살아가며 조율해야 할 이해관계에도 이전에는 없던 새로운 결이 하나둘 더해지고 있습니다.

물론 우리가 유럽의 모델을 그대로 따라야 한다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다만 서로 다른 부분을 남겨둔 채 여러 영역에서 겹쳐 있는 유럽의 그림을 보고 나니,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의 모습도 궁금해졌습니다.

서로 다른 부분이 남아 있더라도, 함께할 수 있는 영역을 만들어갈 수는 있지 않을까.

유럽의 복잡한 다이어그램은 그 질문에 명쾌한 답을 주지는 않았습니다.

대신 처음에는 보이지 않았던 ‘차집합’을 보여주었습니다.

우리는 ‘함께하기’ 위해 서로 ‘같아지기’만을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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